내 안의 빛을 찾아서
2005년 해오름 겨울학교를 다녀와서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몇 해 전부터 아이들의 몸과 영혼의 온전한 성장을 꿈꾸며 해오름 계절학교를 열어왔습니다. 2004년 겨울학교에서는 '내 마음에 심은 꽃'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내면세계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계절책상을 꾸미면서 계절을 온전히 느껴보고, 손과 발로 박자를 맞추고 리듬을 온 몸에 담으며 나와 친구들의 존재를 느껴보았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봄에 싹이 오르듯 아이들도 마음에 자신을 향한 씨앗을 심고 왔습니다. 그리고 2004년 여름학교에서는 '빛으로 여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았습니다. 염색을 통해 자연의 빛을 천에 담아내고, 습식수채화와 네모크레용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몸으로 별과 꽃을 그리며 몸의 감각을 깨우고 그 흐름을 느껴보았습니다. 지난 여름학교의 감흥은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겨울을 기다리게 했나 봅니다. 아이들의 바람을 생각하면서 2005년 겨울학교는 '내 안의 빛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었습니다. 놀이와 수공예·초 만들기·공책 만들기 등 노작활동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직선과 곡선을 만나고 그 선들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담아내려 하였습니다. 내 몸이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세계를 맛보며 아이들은 세상에 우뚝 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삶을 꾸려나갈 준비를 할 것입니다. 땅 위에 올곧게 서서 위로는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아래로는 한없이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세상을 맘껏 펼쳐갔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학교를 준비하며

겨울학교 교사연수에는 여름학교에 참여한 분들이 거의 대부분 참여하셨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하늘 한 번 여유있게 보지 못하다가 온 마음을 열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여름학교가 선생님들에게도 소중한 마음의 고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한여름 땡볕에선 물과 그늘을 찾아가듯, 한없이 움추러드는 겨울엔 온 몸에서 김이 날 정도로 뛰고 노는 게 묘미일 것입니다. 꼿꼿한 직선을 그리며 몸의 흐름을 깨우고,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의식을 깨웁니다. 직선의 끝과 끝을 이으면 하나의 원이 됩니다. 직선은 곧 곡선이 됩니다. 온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내 안의 빛을 찾아갈 준비를 합니다. 운동도 안하고 매일 반복되는 집안 일 외엔 그다지 몸을 쓸 일이 없는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어지간히도 뻣뻣합니다. 아이들은 한 시간이면 어떤 몸짓이든 제 것이 되는데 머리가 큰 어른들은 몸이 내 몸 같지 않습니다.
1박 2일 연수 과정에 이어 하자 교육센터를 빌려 3주간이나 더 놀이와 몸짓 연수를 했습니다. 놀이 따로,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이 '내 안의 빛을 찾아서'라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서로를 세우며 갑니다. 서커스단이나 유랑극단 같은 교사연수는 늘 진지하면서도 로봇처럼 딱딱한 몸들을 발견하는 순간 웃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줄을 뛰어넘으려는데 어릴 적 뜀틀을 못 넘어 선생님께 야단맞은 일이 생각나 덜컥 겁이 나고 그러면 여지없이 줄에 걸리고…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합니다. 굳어진 몸을 푸는 데는 연습 외엔 약이 없듯이 몇 번이고 반복 연습을 했습니다. 끝내 모두가 완성을 하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내 안에 가리워졌던 빛줄기가 서서히 밖으로 퍼져 나옵니다. 다른 이에게 빗장을 풀고 보여줬던 마음의 빛들로 인해 연수 내내 환한 밝음이 서로를 감싸 안았습니다. 겨울학교를 준비하며 한 모둠에서 같이 생활하게 될 아이들에게 모둠 교사들이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어 겨울학교에서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는 겨울학교, 새로운 배움이 있는 겨울학교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전처럼 진행 준비팀이 하루 먼저 가서 준비물도 챙기고 1층 방마다 모둠 이름표도 붙이고 2층에 노래 커튼도 달고 슬라이드도 손보고 별도 접어 창문에 붙이고 계절책상을 만들 준비도 했습니다. 놀이에 흠뻑 빠져 보아야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진정한 기쁨과 삶의 진실됨을 배우게 됩니다. 몸을 움직이며 내 공간을 그려내면서 나와 내 옆 친구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청일농원의 2층 큰 방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쏟아지는 별을 뒤로하고 잠을 청했는데, 갑작스런 추위로 엔진이 얼어 차량을 대체하는 통에 아이들이 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깨어났습니다. 유리마다 하얀 성에가 낀 걸 보니 어지간히 추운 모양입니다. 고생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합니다. 청소도 깨끗이 하고 썰매도 손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옵니다. 들공부 수료식 후에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참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학교의 감흥은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겨울을 기다리게 했나 봅니다. 낯익은 친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달려와 안깁니다. 처음 온 낯선 아이들은 그 광경이 어색하고 신기한 듯 한참을 지켜봅니다. '너네들도 다음에는 그럴 거야' 처음 온 아이들을 눈으로 인사하면서 반갑게 맞았습니다.

소중한 음식 주셔서  /  고맙습니다.
골고루 알맞게       /  잘 먹겠습니다.
이 음식 먹고서      /  참되게 살겠습니다.

배도 고프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두 함께 식사 기도를 따라합니다. 3일 동안 남보다 먼저 먹고 더 많이 놀려고 애쓰기보다는 모여서 밥을 먹고 함께 하는 것을 배우며 모둠 아이들이 한 식구가 됩니다. 예전에는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모둠이 모여서 기다려주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두런두런 밥상머리에 앉은 모습을 보니 한 가족같은 정이 느껴집니다. 개구진 놈들이 먼저 와서 밥을 받아도 모둠 아이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니 굳이 서로 밀치고 먼저 먹으려 설치지 않습니다. 점차 밥상에 평화가 찾아듭니다. 고마움과 기쁨으로 대하는 밥상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먹자마자 개울가로 뛰어갑니다. 미끄럼을 타고 얼음을 깨고 썰매를 타고 추위는 오자마자 잊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온 몸으로 화답하는 아이들을 보니 추운 겨울이 고맙기만 합니다.

겨울학교의 문을 엽니다

징∼ 징∼
개울가에 있던 아이도 식당에 계시던 선생님도 모둠 방에 있던 아이들도 모두 2층 방으로 모입니다. 겨울물오리, 썰매, 하나는 하나지, 아름다운 세상, 들판으로 달려가자, 바람, 햇볕, 무지개 등등 겨울학교의 노래를 배우고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낼 얘기도 하고 모둠과 선생님들의 소개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여름학교에서 함께 한 '별과 꽃'을 몸짓으로 선보이고 새롭게 배울 '아름다운 세상'의 흐름을 아이들에게 펼쳐보였습니다. "선생님, 이번에는 또 달라졌네요."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들입니다. 세상은 하루하루 변하지만 낮이 가면 밤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옵니다. 제 아무리 바쁘게 앞서가려 해도 하루든 1년이든 먼저 살 수는 없습니다. 숨을 들이쉬면 반드시 내쉬듯 세상엔 흐름이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이는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의 법칙성을 온전히 배우고 깨달으려고 사는 지도 모릅니다. 하늘의 별 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과 꽃을 피우며 조화롭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선생님들의 몸짓에 숨어 있는 뜻을 아이들은 알아들었을까요? 그래도 선생님들의 인사는 아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줍니다. 처음 온 친구들은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하며 낯선 분위기에 애써 자기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꼿꼿이 앉아 탐색만 합니다. 하루만 지나면 개울가의 얼음을 깨 먹을 아이들이 점잖게 앉아 있습니다. 이젠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몇 시간 안에 굳은 얼굴이 풀어질지가 보입니다. 마음이 닫힌 아이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일수록 경계를 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차츰 마음을 엽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평평한 땅위로 새싹이 올라옵니다. 가는 줄기에 머금은 물이 뿌리에 저장된 물을 데리러 갑니다. 옆에 또 싹이 오르네요. 땅 밑에서 땅 위로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아름다운 푸른 풀밭이 되었네요. 여기저기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나비도 날아다닙니다.

여느 때처럼 먼저 자신의 이름표를 손수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작활동 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 손이 움직여 가는 길을 몸으로 해 보았습니다. 홈질한 직선을 한 발 한 발 옮기고 나서 그 사이사이를 구불구불 미끄러져 가며 물이 흐르듯 곡선을 그립니다.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한 글자씩 수를 놓았습니다. 1. 2학년만 실을 못 꿸 줄 알고 걱정했는데 학년에 구분이 없습니다. 1학년이어도 잘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6학년 중에도 실을 못 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매듭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에 닥친 험난한 세상 앞에서 아이들은 시도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어린 아이들은 보채고 짜증을 내고 큰 아이들은 화를 냅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면서 몰입하고 집중하면 끝까지 할 수 있는데 한두 번 하다 이내 포기합니다. 내 이름 석자를 다 못 새깁니다. 썰매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립니다. 바깥이 궁금해 못 견딥니다. 이 모든 것을 모둠 교사가 안아 들입니다.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면서 손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의 세계로 아이들을 끊임없이 인도합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완성된 이름표를 가슴에 다니 이름들이 빛납니다. 아이들 얼굴에도 환한 빛이 납니다.
모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해오름은 전국구라더니 점점 아이들이 사방에서 모여 드는 것 같습니다 서울, 인천, 경기, 청주, 순천, 대구에서 횡성으로 왔습니다. 처음 본 얼굴들, 좀 낯익은 얼굴들. 서울 촌놈들은 경상도 말도 전라도 말도 조금씩 배우고 갑니다. 아이들과 콩 주머니를 던지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하늘, 낮과 밤, 나침반, 클로버, 손가락 등등 모둠 이름을 정했습니다. '하나는 하나지'라는 노래에 반한 아이들이 모둠 이름을 아주 잘 만들어냈습니다.

몸으로 직선 느끼기

이름표를 만들고 쏜살같이 개울가로 가던 아이들이 저학년은 식당으로, 고학년은 2층 방으로 모입니다. 저학년은 식당에서 초를 만들고 고학년은 몸놀이를 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곧게 세워진 담도 있고 하늘로 향해 쭉쭉 뻗은 나무도 있고 평평한 땅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내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원을 돌며 노래를 부르다 선생님이 3이라는 숫자를 말하면 세 명이 짝이 되어 3으로 이루어진 직선을 찾는 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삼각형도 만들고 세 명이 누워 'ㄷ'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섯 명, 일곱 명이 모여 직선을 찾아갑니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별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방바닥에 눕고 몸을 반듯하게 세우면서 곧은 선을 찾아갑니다.
또 긴 줄놀이를 했습니다. 타원형으로 긴 줄이 돌고 있을 때 화살이 지나가듯 그 원을 뚫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잰 걸음으로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다음엔 줄이 돌고 있을 때 뛰어오다가 줄을 뛰어넘습니다. 내 앞에 넘어야 할 산을 향해 용기 내어 힘껏 뜁니다. 처음엔 두려움이 가득하던 얼굴들이 한두 번 해 보더니 재미가 솟아납니다. 한 쪽에 모두 서 있다가 제 순서가 되면 줄을 넘어 건너가서 맞은 편에서 다시 화살처럼 줄을 통과해 옵니다. 하나 둘 셋 넷 줄을 맞춰 넘으면서 목소리가 하나가 되고 줄에 걸리지 않고 넘어가도록 응원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못 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건너주니까 두려움이 좀 가시나 봅니다. 용기를 내어 혼자서 해 보기도 합니다. 연속으로 몇 명을 데리고 줄을 넘으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밝은 얼굴에 저 또한 힘을 얻습니다.
또 대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쿵쿵짝' 놀이를 하였습니다. 여름학교에서 몇 해째 해오던 놀이인데 그 전에는 못했던 아이들이 리듬을 타고 잘 놉니다. 깊이 잠자고 있던 몸의 감각이 깨어나듯 사뿐사뿐 잘 뜁니다. 처음 해 보는 아이들은 대나무의 위협적인 소리에 발을 넣기를 두려워합니다. 발이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노래에 맞춰 박자를 맞추니 몸이 살아납니다. 선생님들이 몇날 며칠을 했던 일을 아이들은 단 한 시간에 익혀버립니다. 움직임을 통해서 배우는 아이들, 온 몸으로 자신을 극복하며 성취해내는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2층 방에선 한 겨울에 몸에서 김이 나도록 뛰고 식당에서는 아이들이 초를 만들었습니다. 밀랍으로 초를 만들었는데 중탕기에 밀랍을 녹여 심지에 몇 차례 옷을 입혀 두툼한 초를 만들어냅니다. 중탕기에 심지를 한 번 넣었다 빼서 충분히 식으면 다시 또 심지를 넣습니다. 점점 초의 형태가 잡혀가며 반듯한 초가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은 빛이 될 초를 만드는 신비로운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초가 굳을 때까지 기다리기를 힘들어 합니다.
"왜 빨리 넣으면 안돼요?" 계속 보챕니다. 초가 채 굳지 않은 상태에서 뜨거운 밀랍액에 심지를 넣으면 심지에 붙어있던 밀랍이 다시 녹아버려 초가 반듯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하니 좀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추위에 겹겹이 옷을 입은 아이들처럼 초가 모양을 갖추니 이번에는 "선생님 이 초도 타나요?" 제가 만들어 놓고도 의심이 갑니다. 실생활에 쓰는 물건을 사보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밀랍초는 예전에 귀하게 쓰이던 물건으로 지금 우리나라에는 만드는 사람이 드물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요즘도 크리스마스 때나 마을축제 때 한 집에 모여 초를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미리 다듬은 촛대에 초를 세우니 초가 더욱 멋집니다.

몸으로 곡선 느끼기  

사람의 모습을 찬찬히 보면 곧은 선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둥글둥글하거나 굽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서서 한 사람은 눈을 감고 한 사람은 부드러운 선과 날카로운 선을 그려 보게 합니다. 예민한 아이들은 편한 느낌과 눈앞에서 뭔가 휙 지나가는 듯한 차가운 느낌을 구별해 냅니다.
또 손을 맞잡고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 놓고 서로 맞잡습니다. 위에서 보면 8자를 그리게 되지요. 두 손의 얽힘을 풀어보게 합니다. 두 손이 꽁꽁 묶여 답답해하며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한 사람이 그냥 한 바퀴 돌아볼까? 우연히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풀려 버립니다. 두 사람, 네 사람, 여덟 사람, 전체가 모여도 천천히 풀려나갑니다. 뭔가 맺혔던 것들이 풀려나가듯 속 시원하게 풀려나갑니다. 다시 감아내기도 합니다. 내 안에 들어온 것을 활짝 펼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손을 옆 사람과 맞잡은 채로 그대로 뻣뻣하게 있으면 팔이 꺾여 버리고 맙니다. 옆 사람의 움직임을 느끼며 팔을 부드럽게 돌리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됩니다. 물결이 흐르듯 자연스런 흐름에 아이들이 모두 경탄합니다. 큰 원을 만들어 원의 형태를 뒤집어 보고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기도 했습니다. 장갑을 뒤집었다 바로 펴듯이 원이 뒤집힌다니 신기합니다. 그냥 앞사람만 따라 갔는데 맞은 편에 있던 사람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합니다. 내 앞에 펼쳐진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사방을 느끼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합니다. 움직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밀치고 뛰어가며 장난을 치다 우르르 몰려가기도 하지만 흐름을 놓치지는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또 줄을 넘었습니다. 반듯한 줄이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곡선을 그립니다. 그냥 줄을 넘는 게 아니라 구구단을 외며 제자리에서 줄을 넘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구구단도 못 외우냐고 큰소리치던 아이들이 직접 해보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모두 꽁무니를 뺍니다. 다시 해보고 또 해보고. 제 자리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힘차게 달려 나갑니다. 제자리에서 구구단 한 단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뜁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안간힘을 씁니다. 도전하고 또 하고 줄을 넘으며 노래도 불러봅니다. 뛰는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아쉽게도 저학년 중에는 겁이 나서 못 넘어본 아이들도 있습니다. 쿵쿵짝의 대나무가 두렵듯이 줄을 넘는다는 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서 넘어본 아이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다시 도전을 합니다. "선생님, 내가 드디어 해냈어요." 뛰어와서 안기면서 춤을 춥니다. 자신감에 찬 얼굴에 또 환한 빛이 느껴집니다. '나는 못해. 어려워' 하던 아이들도 다음 겨울학교에서는 도전을 해 보겠지요. 줄이 땅에 닿으면 아이들은 하늘높이 오르고 줄이 하늘에 오르면 아이들은 땅에 발을 딛습니다. 줄을 돌리면서 보니 큰 원 안에서 아이들이 구구단 리듬에 맞춰 훌쩍훌쩍 뛰는 것 같습니다 줄과 아이들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나를 완성해 갑니다.      

직선과 곡선의 만남

쿵쿵짝을 뛸 때나 줄을 넘을 때 아이들의 몸은 직선도 되고 곡선도 됩니다. 직선과 곡선의 어우러짐도 느껴봅니다. 이번에는 가파른 산에 오르고 내리고, 물줄기가 되어 굽이쳐 내려오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음에 맞춰 몸을 움직여 봅니다.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 봅니다. 어색하지만 혼자서 둘이서 마음을 맞춰 함께 해 봅니다.
또 아이들과 등나무로 수공예를 했습니다. 곧은 선을 한 바퀴 돌리니 원이 만들어집니다. 직선이 바로 곡선이 되었습니다. 중심을 맞추고 털실로 반을 가르고 또 반을 갈라 실로 묶습니다. 또 사이사이 중심과 간격을 유지하면서 털실로 세상의 축을 만들 듯 씨실을 만듭니다. 바퀴모양의 등나무 수틀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색을 날실로 하여 씨실을 하나하나 건넙니다. 중심을 돌고 나서 색을 이어가며 지구를 한 바퀴 돌듯, 굴곡이 있는 길을 가듯,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직조의 원리를 배우고 짜임을 배웁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듯이 상반되지만 조화로운 세상의 이치를 어렴풋이 더듬어 봅니다. 균형과 조화를 꿈꾸며 아이들과 수공예를 완성했습니다. 단순한 작업 같으면서도 온 정신을 몰입하지 않으면 평평하게 고른 모양이 나오지 않고 실이 한 곳으로 뭉칩니다. 가느다란 실이 겹겹이 쌓여 씨실을 이루고 씨실과 날실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하나의 면이 탄생합니다. 저학년은 수틀도 작게 만들고 씨실과 날실도 적게 감아 되도록 아이들 스스로 해보게끔 하려고 했습니다.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선생님의 손을 빌려야만 완성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할 수 있는 수위를 좀 더 세심하게 고민해야겠습니다.

몸의 흐름을 손과 마음으로

아이들이 직접 만든 공책에 이틀 동안 몸으로 움직였던 흐름을 담아보았습니다. 반듯한 직선을 그리고, 내 의지가 반영된 곡선을 그리고 풀어내며 나의 움직임을 다시 봅니다. 또 초를 켜고 빛을 밝히며 내 안에 꼭꼭 숨어있던 자신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않아 속상했던 것들도 훌훌 털어냅니다. 서로 친구가 되어 더 즐거울 수 있었던 겨울학교를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요

계절학교의 꽃은 생활 속의 놀이와 노래입니다. 특정한 주제를 갖고 보다 집중해서 몰입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듭니다. 이번 겨울학교에는 쉬는 시간 틈틈이 노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걷고 뛰는 놀이였습니다. 노래 또한 늘 듣고 그저 따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전한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겨울밤을 밝히며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불길을 보면서 도나노비스파쳄(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을 부르던 아이들의 고운 소리는 콧등이 시큰할 정도로 서로에게 아련하게 전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짜증이 나거나 속상할 때 평화의 노래가 자기를 위로해 줄 거라고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게 하는 노래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갑자기 아이들이 훌쩍 커 보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따라 부르기 힘들어  하면서도 이틀만 지나면 모두가 한 소리가 됩니다. 계절학교에서는 좀더 의식적으로 돌림노래를 많이 가르칩니다. 어디를 가도 제 목소리만 내려는 세상에서 아이들도 어디를 가든 자기를 드러내어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애처롭게 자기를 봐달라고 해도 아무도 봐 주지 않을 때는 끝없는 좌절을 느끼고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돌림노래는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줍니다. 또한 의식하지 못한 채 앞서 가며 남에게 상처를 주었던 마음들도 끌어내려 줍니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모두 감싸 안습니다. 돌림노래는 여러 부분 중 한 부분이 크면 화음을 못 만듭니다. 우물우물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있게 정확한 음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큰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돌림노래는 아이들이 당당하게 세상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구슬비, 딩동벨, 바람바람, 뚬바뚬바, 디리디리 등 돌림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모습이 선합니다.
      
찾아가는 놀이

농원 마당에 달팽이 모양을 크게 그려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시작과 끝이 없는 달팽이 속에서 계속 돌고 돕니다. 바둑판 모양으로 그려놓은 미로놀이판에서는 박자에 맞춰 걸으면서 괴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을 다닙니다. 괴물 뒤에 따라붙으며 안심이다 싶었는데 꼭 잡히고 맙니다. 밖에 나와서도 줄넘기를 합니다. 10명이 함께 뛰어보며 호흡을 맞추어 보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썰매를 탔습니다.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썰매도 혼자 타는 것보다 여럿이 타는 맛을 알아갑니다.

연못에 꽁꽁 얼음 얼어서 썰매타기 좋구나 재미있구나
바람 속을 달려가면 씽씽씽 얼음이면 어디라도 씽씽씽
연못의 고기들아 얼음장 밑에 추워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나
우리는 썰매탄다 씽씽씽 우리는 재미난다 우리는 씽씽씽

투명하게 얼은 개울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물고기들이 보입니다. 얼음을 깨기도 하고 얼음을 먹기도 합니다. 눈이 안 와서 눈썰매를 못타 안타까웠던지 아이들이 물이 언 구릉을 찾아 미끄럼을 탑니다. 컴퓨터나 게임기가 없어도 심심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양미리를 구울 나무를 찾아오고 코가 얼어붙는 추위의 얼음판 위에서 안방인 듯 뒹굴기도 합니다.
      
창조의 세계로 들어가기

이틀 동안 놀면서 배운 리듬을 내 몸에 온전히 담아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둠 아이들이 가장 마음에 드는 놀이나 노래를 재구성하여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을 나누고 빛을 주고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쿵쿵짝을 하면서 그 리듬을 완전히 소화해 내고 연습한 만큼 줄을 다시 넘지 못해도 친구들의 응원으로 새로운 자신감을 얻습니다. 흐르는 선을 따라가 보며 큰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털실 하나로 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발표가 아니라 2박3일의 겨울학교를 아이들 스스로 마음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연습하는 과정이 더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재미있는 놀이를 한 번 더 해보고 좋은 노래를 한 번 더 불러보는 시간, 그런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발표시간도 모두가 즐겁고 진지합니다. 서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모두 한마음이 됩니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내가 만든 초와 수공예 작품이 어우러진 계절책상, 그림이 있는 노래 커튼,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 슬라이드의 빛할아버지 이야기, 하늘로 꼬리를 달고 올라갔던 불길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헤어질 인사를 합니다. 또 아이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합니다. 하루만 더 있다 가자고 합니다. 다 큰 6학년 녀석들은 "1학년은 좋겠다. 아직도 올 날이 많잖아요, 폭설이 와서 고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6학년 2학기에 겨울학교에 처음 온 아이들은 너무 아쉬워합니다. 한 번만 더 왔으면 합니다. 너무 속상해합니다. 눈이 빨개져서 아이들한테 울면서 졸업인사를 하던 범진이, 수민이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도 크면 여름의 윤익이처럼 보조교사로 온다고 하겠지요. 올 겨울학교에는 5, 6학년 아이들이 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없다시피한 고학년이 점차 많아집니다. 저학년부터 다닌 아이들이 계속 오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만큼 아이들과 더 진실되게 만날 탄탄한 내용이 있어야겠습니다.
짧은 2박3일, 나누고 싶은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욕심을 내서 해보고 돌아서면 또 너무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주일동안 100명도 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돌아와서 비디오나 사진을 보니 참 이상하게도 여유있어 보입니다. 그 많은 아이들도 다른 때보다 대부분 낯이 익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들 같습니다. 함께 놀았던 시간이 많아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2층 방에만 모이면 아이들은 방바닥에 누워있거나 기어다니거나 온 방을 뛰어다닙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땅이 나오고 거기서도 놀이터까지도 좀 가야만 놀 곳이 있는 아이들에게 농원의 큰 방은 좋은 놀이터입니다. 그저 넓은 바닥을 몸으로 닦고 기어다니는 것만도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함께 한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점점 계절학교의 틀이 갖춰지는 것 같습니다. 모둠을 이끌어 가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같이 어우러지게 하고, 아픈 애들도 돌보고 바쁜 3일을 보내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거의 붙박이 선생님이 된 정아 선생님, 많은 도움을 주었던 현석이. 제신이, 상민이, 기범이. 혜승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성이 마씨고 이름이 니샘인 개울가에서 토토로된 마니샘, 늘 밝게 아이들을 맞아주던 저의 파트너 경주 선생님도 고맙고,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농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겨울이 다 가면 횡성의 금평분교에서 새 단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겠지요. 그러면서 또 새로운 좋은 분들을 만날 날을 기대를 해 봅니다.
해오름은 겨울학교를 시작으로 한 해를 엽니다. 추운 겨울을 움직임 속에서 배우고 내 안에 작은 씨앗을 심으며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도 한 살 더 먹어 이제 좀 뭔가 세상을 알 것 같은지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약합니다. 해오름도 아이들도 활짝 열린 세상 한가운데 있는 나를 느끼며 힘차게 한발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