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아프리카
1986년에 나온 영화이다. 영화관에서 본 게 아니라 한참 뒤 집에서 20인치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1986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아시안 게임을 한 해 이고 88올림픽을 하기 전이며 우리 아들이 태어난 해 이기도 하고 내가 서른도 안 되었을 때이기도 하다. 갑갑하고 무기력한 삶에서 탈출하듯 결혼을 했는데 그게 난리통 속이라 ‘내 무덤 내가 팠구나’ 하며 정신없이 살 때였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두 아이를 기르느라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놓고도 못 볼 때가 많았다. 숨 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열 세평 집에서 아이들, 남편 다 재워놓고 볼륨 있는 대로 죽이고 몰래 보았다.  죽었다 깨나도 가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아프리카의 그 광활함과 자유함이 마음에 사무쳐 눈을 부릅뜨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부터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로버트레드포드는 그 전부터 좋아했지만 이 영화는 메릴 스트립의 영화이다. 그녀의 회색 눈빛에는 삶의 우울함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그리고 사랑에 목마른 여인의 안타까운 열정이 가득했다.
1986년에 본 후 근 이십여 년 동안 이 영화는 내게 잊혀지지 않는 첫 번 째 영화였다. 아슴프레 줄거리는 다 잊었는데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달리던 기차는 선명하게 떠오른다. 주인공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던 풍광도 시간을 거슬러 생생하게 기억난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마음대로 유린하던 시대적 배경은 차치하고 그저 마음으로라도 그런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 다시 보았다. 그 때 두 살배기였던 딸과 함께. 52인치 화면에 DVD로. 웅얼거리는 듯 한 메릴 스트립의 목소리도, 꽥꽥거리는 기차소리도 다 들으면서. 어쩌면 지금은 마음을 아주 굳세게 먹으면 아프리카에 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세월이 변했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보았다.
나는 이제 서른도 아니고 쉰이 되었고 마음 정리를 적당히 할 줄 알아서 이제 오밤중에 혼자 영화 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지만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은 여전히 머리를 산발하고 히스테리컬해 보이는 뾰족한 턱과 회색 눈빛을 하고 초원을 누빈다.
하긴, 젊다고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무모한 도전이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선택하는 그녀의 단호함이, 짧은 순간이지만 일생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을 하는 그녀의 행운이 덤덤한 나의 일상에 반짝 빛이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인가? 잊고 있었던 배경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저릿저릿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