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정엄마 생신 때, 우리 형제들로 부터 일요일 점심에 모이자고 연락이 왔다.
우리 남편 왈, "그럼 엄마 점심은 어떻게 해?"
매 주일 마다 예배가 끝나면 어머니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는 터라 무심코 나온 말이겠지만 순간 딱! 내 비위를 거슬렀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그러게.... 어쩌지?" 했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까 엄마랑 먼저 점심을 먹고 장모님 모임에 가면 안될까?" 했다.
목구멍에서 부터 울컥!
그래도 또 한 번 꿀꺽 하고 "어떻게 밥을 두 번이나 먹어. 그냥 어머니께 잘 말씀드리고 집에만 모셔다 드려."
다시 남편이 "에이, 일주일에 한 번 밥 같이 먹는 건데...."
할 수 없이 내가 쐐기를 박을 수 밖에!
"됐어! 당신 엄마는 한 주일 빼고 매주 밥 같이 먹잖아. 우리 엄마는 매주 빼고 한 번 같이 먹는거야!!"
.........
그래서 일요일 아침, 우리 형제들 주려고 텃밭에서 딴 가지랑 고추를 세 봉지 만들어 막 차를 타려니까 남편 왈,
"그거, 트렁크에 실어"
"왜?"
"이따 엄마가 차타면 좀 보기 그렇잖아"
또 울컥! 어머니를 안드린 것도 아니고 매주 만나면서 생생, 때깔 좋은 것으로만 골라 갖다드렸구만.... 내가 농사지은 것, 내가 주고 싶은데 왠 눈치를 주남? 싶었지만 잘 참는 내가 또 꿀꺽!
결국 트렁크에 넣고 간 채소는 종일 까맣게 잊고 저녁에 그대로 싣고 왔다.
다음날, 갑자기, 불현듯, 소스라치게 생각이 났지만 어쩌겠는가. 그거 주러 다시 모이랄 수도 없고....
날이 갈수록 쫌생이가 되어가는 남편이 엄청 화가 났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그런 사소한 일로 싸우기가 싫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내가 좋게 말할 기분이 되면 그 때 말해야지 하고 묻어두었다.
 
광복절날 쉰다며 둘이 북한산에 가자고 했다.
등산바지가 여름 것이 없다고 해서 하나 사다 놓고 저녁에 딸이랑 유리드미 공연을 보러갔다.
공연 다 보고 돌아오는 길인데 남편이 전화를 했다.
"도대체 언제 와?
저녁에 나간다고 이틀 전부터 말을 해 놨고, 저녁밥 다 차려놨고, 바지까지 사다놨는데.... 또 뭐가 문제람? 머리를 어지럽게 굴리면서
"지금 가고 있어.좀만 기다려. 근데 왜?"
"바지 줄여야 되는데 어떻게 할려고 그래?"
"가서 줄여줄께."
"나 자야 된단말이야!" 하며 화를 벌컥 냈다.
아니, 열시 조금 넘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멍하는데 전화를 뚝 끊었다.
잠시 뒤 내가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끊어?"
"피곤한데 집에 아무도 없고 짜증나니까 그렇지"
"그럼 먼저 자"
"바지는?"
"바지 낼 아침에 입을 수 있게 해 줄게. 얼마큼 줄일지 잘 접어놓고 자." 했더니
"혼자 어떻게 접어!"
하이구... 유구 무언.....
애들 같으면 내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고....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 싸고, 아침으로 먹을 주먹밥도 만들고 그리고 남편 바지 입혀보고 길이 줄여주고..... 생 난리 굿을 하고 북한산에 갔다.
문수봉 정상에 올라 도시락을 먹었다. 남편은 맛있다고 연발을 해대며 밥을 먹었다. 돈벌어 오느라 마음놓고 휴일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이까짓 소풍이 저리 즐거운가 싶어 잠깐 안쓰럽기도 했지만 기회다 싶어 말을 시작했다.
"지난 번에 엄마 생신 때 말이야...."
한 가지씩 슬슬 꺼내 차례차례 항복을 받았다.
"당신이 잘못했지?"
"...그래"
"미안하다고 해봐"
".... 미안해"
"담엔 그러지마?"
"....알았어"
절대 개선이 안될 일이고 언제나 엎드려 절받기지만 어쨋든 그렇게라도  받아야 마음이 풀리지.  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