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2099일 물날, 아침엔 맑았다가 점심 이후 비오고 흐림

텍스트 :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주 제 : 토론 쟁점 설정하기, 토론 수업의 목표와 개념 그리고 다양한 토론 방식과 그 효과

길잡이 : 박형만 (해오름 으뜸일꾼)

 

정연*

작품도 짧고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라 토론 쟁점 만들기 숙제는 금방 하겠거니 싶어 어제부터 아침부터 시작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오래 걸려 결국 오늘 아침에 부랴부랴 제출했습니다. 반성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해 질문으로 만들지 못했던 '카스파 하우저'사건이 좀 아쉬웠는데 다음 시간 과제에 포함시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

제게 오멜라스의 지하실에 갇혀 있는 아이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카스파 하우저 사건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카스파 하우저 사건 참조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yeonbang&logNo=22064106037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저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많이 없어서 논리적 분석, 추론이나 유추가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논리설정의 3단계 적용하기''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작품을 토대로 분석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 안에 있는 막연한 그림을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언어는 늘 조금씩 미끄러지는 법이지만요.

다만 한 가지...

오늘 수업 중에는 오멜라스의 문제해결을 위한 해법을 제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오멜라스의 모습은 작가가 우리 각자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라고 만든 임의적인 모습이라 생각했거든요. 거기에 그리스 사티로스 축제를 떠올리는 성교의 쾌락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상상해도 되고, 황홀을 경험하는 마약이 필요하다면 중독되지 않는 마약이 있어도 되고 (각자의 유토피아적 상상에서 마약이 필요치않으면 없어도 되는) 온갖 생활의 편리가 필요하다면 기계문명을 상상해도 되는.

각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떠올리되, 오멜라스 사람들은 순진 무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숙하고 지적이며 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이 사람들에겐 "한없이 크나큰 만족감과 고결한 위업은 바깥의 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있는 가장 고결하고 공명정대한 영혼들과, 그리고 세상의 빛나는 여름과의 교감으로 얻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멜라스 사람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것이며, 오멜라스 사람들이 축하하는 승리는 인생에 대한 승리다."

이 부분을 읽고 저는 오멜라스 사람들이 체결한 계약은 사실 태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사회계약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홉스의 사회계약설처럼 '인간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표현되는 힘에 의한 야만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주권을 자발적으로 국가에 위임하되, 그 동의가 계약서 작성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약파기나 변경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인류가 절대군주(, 교황, , 국가 등 으로 형태만 바뀌는)로부터 자신의 주권을 되찾아오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고 있듯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오멜라스의 온화한 날씨조차 이 계약에 의존하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보니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있는 것처럼 오멜라스를 상상하기 위해선 지하실 아이도 함께 주어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이라서요.

암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폭주하는 기차 이야기처럼 사고 실험에 해당하는 가상의 상황이라 상투적인 해법은 무의미하고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나에게 작동하는 사고 안에 어떤 개념이 들어 있는지 내 사고를 관찰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발문을 늘 어려워했기에 다음 주 하브루타 독서토론 방법이 무척 기대됩니다.

늦지 않게 과제 제출할께요, 앎을 삶으로! ^^

오늘도 감사합니다

 

유은*

수업에 앞서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읽었다. 나는 라면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지? 본능적인 생각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라면을 먹는 동안, 일상에 묻혀 있는 동안 주위를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았음에 나를 돌아보게 했다.

문제를 찾고 대안을 정립한 것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기의 3단계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해법은 무엇인지. 오늘 수업에서는 텍스트에 함의된 문제점을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법과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현상과 본질을 동시에 볼 줄 알아야함을 알게 됐다.

해법 제시를 비롯한 질문의 3단계는 모두 보편적 가치에 근거해야한다는 것. 이를 놓치고 있지 않았나 살펴보게 되었다. 또한 원심적 독해에 머물러,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만 치중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나싶다. 박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교육의 문제는 앎과 삶의 철저한 분리다"가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질문하기를 배우다 보니 논리가 정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체득하려면 멀었지만 한 걸음 옮겼으니 적용하려고 많이 노력해봐야겠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정*

먼저, 정의 그리고 행복이란 단어 앞에 붙었던 수식어. 끔직한, 진정한이란 단어가 줬던 불편함이 합리화 때문이었을까. 누려야 할 권리가 같다면 책임의 부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약자란 이름을 배려하여 다시 질서가 재배치되어야 하는 것인가. 정말 많은 숙제를 준 수업이었습니다. 행복이란 감정을 추구한 것이 문제의 발단은 아니었나. 행복하려고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얘기한 이야기속의 궤변가들이 의중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함께 존재 하는 본질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진정한 행복. 그진정함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 참 많구나. 여지껏 해결되지 못한채 잠식되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하고 .참으로 많은 질문을 남긴 수업이었습니다.

문제적 요인에 매몰되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것.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란 것에 적잖은 충격이 있었습니다. 삶의 고단함을 합리화로 대충 빨리 넘기러 했던 제 자세의 불편함이 수면위로 자꾸 떠오르니 ..힘듭니다요...^^' 감사합니다.

 

 

허귀*

소감문을 잘 안 올려서 오늘 뜨금하여 올립니다.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을 처음 읽고 저는 기억전달자도 떠올랐고 작년에 본 영화 월성도 떠올랐습니다.

지난 주 태풍으로 저희 집은 다섯 시간정도 정전이었습니다. 다행이도 거의 제가 자는 시간동안 정전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수기 물 한 잔을 마시는 데 일어나니 정전이라 물을 마실 수 없어서 아주 잠깐 짜증이 났습니다. 동네가 다 정전이라 인터넷도 잘 안되고 뉴스도 볼 수 없고 정말 전기가 있어서 난 정말 편하게 살고 있구나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월성의 할머니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그 할머니들의 희생이 정말 당연한 걸까? 나는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올해 초 울산 북구에서는 원전 폐기물 관련 주민 투표가 있었는데 우연히 제가 속한 곳을 통해 투표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편안함 뒤에 원전의 위험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멜라스의 지하 감방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월성의 할머니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개를 연결하여 토론 쟁점을 만들기 위해 엄청 낑낑 거렸는데 질문하기3원칙을 적용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수업에서 배운 질문하기를 이용하여 좀 더 연습해야할 듯합니다.

2개의 태풍이 연속적으로 오는 바람에 정신도 없고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주변에서 나오는 바람에 과제를 생각만큼 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과제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합니다.

 

문송*

안락한 소파에 앉아  TV 속 중국 어느 산간 지방의 끔찍한 지진 현장을 지켜보며, 자신의 손톱 아래 가시를 못 견디게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에, 다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수업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한 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소한 개선을 위해서 자신들의 고상한 삶을 포기할 수 없어하는 오멜라스 사람들...

이야기를  몇 차례 반복해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었어요.

우리 삶의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조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는 게 저는 참 어렵더라고요.

특히, 앞에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오멜라스의 모습이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기는 하나 좀 이상하다. 어딘가 모순적이다. 라는 느낌만 있었습니다. 박형만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걸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주시는 게 참 좋았습니다.

오멜라스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을 글에서는 빛과 어둠, 혹은 안과 밖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오멜라스라는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현실. 분리된 듯 하지만 이는 연결돼 있다는 것. 그것이 오멜라스가 갖고 있는 모순이자, 변화해야할 당위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라면을 먹을 때에서 바람이 분다는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 변화, 동요...

제게도 이 수업이 바람 같거든요. 강하고 세찬 바람. 물론 의미가 좀 다르지만요^^

그 바람 덕분에 뭔가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동은 앎으로부터, 이 수업으로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3단계로 질문하기를 해보았는데, 엄청 어려웠습니다.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에 빠져서, 문제와 원인, 그리고 해결방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 3단계로 질문하기를 많이 하다보면 독해에 틀림없이 도움이 되겠구나. 좀 더 면밀하게 글을 읽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렵지만 앞으로도 글을 읽을 때 문제제기, 그 원인, 그리고 해결방안을 잊지 않고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매 시간 참 안타깝고, 자괴감이 빠지게 됩니다. 배우는 것은 많은데 항상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겠죠? 선생님의 가르침을 꼭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활용해보고 아이들과 깊이 있는 책읽기를 꼭!! 해보겠다 다짐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도 또 뵙겠습니다.

 

곽봉*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고 갇힌 아이로 인해 가슴이 쓰라리듯 아프면서 묵인하고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으나.  문득, 학생들에게 공리주의를 설명했던 제가 생각나서 정말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서울대 윤리학과 송봉호교수님이 말씀하신 윤리란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나누면서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를 얘기했었습니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였다면 이제는 '우리' 로 확대해야 진정한 함께 행복이라고 말했었지요

공동체의 삶에서 나의 가치판단 기준인 '우리'를 외치며 내세웠던 공리주의를 나와 내 학생들은 얼마나 진실하게 고민했었나하는 충격과 함께 불편했습니다.

결론 내렸습니다. 진정한 공리주의라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지향하기 위해서 소수 - 특히 약자인 소수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구요.

핀란드의 교육이 생각났습니다. 학습부진아를 위한 성적향상팀의 노력, 한 사람의 부진아를 행복한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들을 행복도 2위의 국가로 만들었다는 진실을요.

내 아이에게 도움되기 위해서 시작한 이 배움의 시간들이 사실은 벅차서 떠나고 싶기도 했거든요ᆢ.

계속해 볼랍니다. 저에게 이케 혼란과 깊은 생각을 주는 수업은 첨이자 마지막일거라는 위안과 기대와 함께.


박은*

오멜라스에 대한 긴 여운이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몇 번을 읽고 나서야 오멜라스라는 작은 사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여름 축제로 시작하는 오멜라스는 즐겁고 행복한 곳인가라는 착각을 하다가 작은 아이가 나오면서 사회 전체 구성원이 함께 지키고 있는 이상한 계약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비참함을 눈으로 보고도 전체의 행복을 위해 개개인이 계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서로에게 고통인 듯 했습니다. 다행히 분노에 찬 청소년이 있다는 것에 사회가 그 계약에 모두 취해있지는 않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오멜라스가 과연 이 단편 소설에만 존재하는 이상한 사회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동체에서도 곳곳에 이 논리는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도 급속한 성장을 이룰 때 여공들의 비참한 노동환경이 그랬고, 반도체를 만드는 일류 기업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도저히 개인으로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운 또 다른 작은 아이가 이 사회에 존재할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깨어 있는 사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약이 부당하다는 것을 앎으로서 개인이 느끼는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론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 위에 행복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그리고 그 약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될 때, 몇 해 전 겨울에 대한민국도 촛불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멜라스의 사회에서는 깨달은 개개인의 힘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멜라스라는 사회를 통해 우리의 사회를 반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네요. 결코 다수가 정의가 되면서 그것을 위해 희생될 소수가 있으면 안되겠지요. 누구에게나 존엄한 삶은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곱씹습니다.

9강 수업으로 토론의 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읽고 함께 나누면서 또 하나의 보편적 가치를 깊이 배웠습니다. 함께 선생님들과 소회의실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니 그 즐거움이 한층 배가 되네요. 앞으로도 귀한 시간 잘 부탁드립니다.